2000년전 유물로 드러난 일본 고대사의 비밀
美 역사학자 존카터 코벨 일본에서 배척 당해
"역사가들은 2000년전 수준높은 예술작품을 남겨준 한국인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미국 역사학자이자 미술사학자 그리고 일본 고대사의 권위자였던 존카터 코벨 교수는 이같이 말했습니다
존카터 코벨 교수는 남은 여생을 한국에 거주하며 무려 1천여 편의 한국 고대사 관련 저서와 컬럼을 남겼으며 30년년 전 아마도 최초로 일본은 솔직하지 못한 기질 때문에 향후 우경화에 빠질 것이라고 예측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국에는 그녀의 이름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면에선 그녀는 한국과 일본으로부터 무시당했던 학자였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일본과 한국으로부터 코벨은 외면을 당했을까요?
최근 한류 재열풍과 함께 존카터 코벨의 저서와 컬럼들이 재조명되며 한국에 의한 일본 고대 왕조 수립이 회자되고 있어서 코벨 교수가 저술한 '부여기마족과 왜' 그리고 코벨 학자에 대해 다룬 기존 다큐 등을 참고해 주요내용을 간략히 공유해 보고자 합니다
"진실의 단서가 된 청동거울의 발견"
코벨 교수는 1910년 태어나 1986년 76세로 생애를 마친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미술사학자입니다 조선이 일본에 식민지배를 받던 시기 미국에서 태어났고 일본의 진주만 공격이 있던 젊은 시절 일본 고대사에 심취하였고 일본에 건너가 수십년간 머물며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일본 고대사와 동양미술사에 대해 권위와 조예가 깊은 학자중 한 사람이였습니다
그러나 중년의 존카터 코벨 교수는 동양미술사를 연구하던 중 한국의 덕수궁 골목길 한 골동품점에서 청동거울 2점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이후부터는 한국 고대사와 한국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으로 무려 1천여 편의 저술과 칼럼을 쓰게 되는데요 그녀는 50세까지 일본에 심취해 온통 일본문화 연구에 매진해 왔으나 그 명성을 다 버리고 일본 고대사를 원점에서 다시 연구해야만 했습니다 2000년 전 것으로 밝혀진 한국의 청동거울은 일본 고대사를 뒤집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던 것입니다
날조된 일본 고대사
그녀의 컬럼 중 일본 '서기'를 장식하고 있는 여성 '신공황후'는 가야의 여전사였음을 주장하는 발표를 고증을 통해 처음 주장했습니다 일본의 신공황후는 일본 서기에는 4세기 백제 근초고왕, 근수구왕 시대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 시기 삼국유사, 삼국사기, 중국의 정서에는 일본의 여성 통치자에 관한 기록은 없었기 때문에 한국의 독보적인 사학자 서울대 천관우 교수는 당시 이것은 일본이 정체성 확립을 위해 만들어낸 가공의 신화적 인물로 여겼었습니다 일본 서기에는 신공황후가 가야를 정복하고 고구려의 항복을 받았다는 소설같은 환타지를 그들 대중에 퍼뜨려 은연중 믿게 만들었다는 것이죠
일본 민족과 왕조의 원류 밝혀져
하지만 단돈 10달러로 한국의 청동거울을 만난 그녀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한국 고대사를 깊이 연구하면서 한국이 일본의 원류라는 사실과 실타래를 따라 백제시대, 삼한시대, 가야왕국으로 그리고 멀리 바다를 건너 부여국 그리고 대륙으로 더 올라가 중앙아시아에 다다랐고 1986년 코벨이 지병으로 별세한 이후 이곳 중앙아시아 대륙 파지리크 고분에서 가야 여전사와 같은 여성 사면이 발견된 것입니다
즉, 기원전 2000년 타클라마칸 소하묘 유적에서 일본 규슈의 쿠보이즈미 마루 야마 고분과 돌무덤이 같은 형태임이 확인됐고 한국에서도 옛 가야지역 대성동 고분에서 1600년 고대 여성의 3명의 시신과 전사를 상징하는 창이 함께 발견됨으로써 가야에 여성 전사가 존재했다는 것과 이것은 최초의 한국인 여전사로 기록되었습니다 이로써 일본 민족이 대륙으로부터 왔으며 한국의 가야 기마족 여전사에 의해 일본이 정벌당했다는 것이 고증으로 입증된 것입니다
일본 고대사의 권위자 코벨, 일본에서 지워져
이러한 역사적 고증이 있은 이후 일본 고대사의 권위자 코벨은 일본 학계에서 점차 지워지기 시작했고 한국에서조차 도외시됐습니다 코벨을 다룬 기존 자료들은 윤동주 시인이 어떤 일본인들에게 불편한 인물이듯 그녀도 같은 존재로 일본, 한국에서 지워졌던 것입니다
당시 일본학자는 '천황제가 훼손되면 안된다'
한국학자는 '기존의 학설을 유지해야 한다'
정치인들은 '북한과 같은 주장을 하면 곤란하다'
라는 이유로 그녀의 연구결과와 주장들은 도외시됐고 또한 그녀는 예술사 전공자이지 정통 역사학자가 아니다 라며 폄하됐습니다 그녀가 미국의 역사학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어거지로 명분을 들어 한일공동위원회는 코벨의 주장을 덮어버리려 했습니다
'일본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코벨이 주장했던 일본의 조상과 왕조수립이 한국과 부여와 관련있다는 사실을 일본 역사가들도 이미 알고 있다고 말해집니다 다만 그것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일본인들의 본래의 기질이 문제의 발단이라고 존카터 코벨은 30년 전 컬럼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솔직하지 못함이 곧 일본을 우경화에 빠뜨리게 할 것이라고 예측했고 30년 후 현재 일본사회는 실제로 깊은 우경화에 빠져 있습니다
코벨 이전 이미 19세기 사학자들도 같은 주장
이렇듯 한국에 의해 일본 왕조가 수립됐고 일본의 조상이 대륙에서 왔다는 주장은 이미 윌리엄 엘리엇 그리피스, 게리레쟈드, 샘 존슨 등 학자들도 같았습니다 미국의 그리피스 교수는 19세기말 일본에 근대식교육을 도입시킨 장본인이며
게리레쟈드 교수는 컬럼비아대 한국학의 권위자 중 한 명입니다 코벨은 자신의 연구기반이 이들 19세기 역사학자들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컬럼을 통해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몇몇 다큐멘터리 등에서는 한국에서는 불행히도 이런 사학자들의 존재 그 자체를 모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인정한 역사학자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박창암 교수, 천관우 교수가 그들인데요, 특히 천관우 교수는 서울대 사학과 출신 중 독보적인 인물로서 가야왕국의 기마족이 일본에 들어갔다는 기본적인 사실에 공감한 학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가 정확히 언제이며 어떤 방편으로 쓰였는지는 일본은 철저히 비공개로 하고 있어서 100% 확신은 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오사카 지역의 일본 왕릉고분인 인덕천황릉은 그러한 비밀을 간직한 곳으로 이곳은 한국의 전반후원분과 같은 네모와 원을 합친 형태로 궁금증이 더합니다
한국의 '풍류(風流)'가 제대로다
1976년 여름 존카터 코벨은 '풍류(風流)' 에 대한 예술사적 견해에서 한국의 풍류는 중국과 일본의 것보다 더 명확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시인 김삿갓과 황진이가 그런것 처럼 솔직하고 메인데 없이 사물을 즐기는 태도 그 자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 20년 동안 살았지만 그 속을 알 수 없다면서 한국인과 보낸 10년이 더 편안함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존카터 코벨은 일본인을 사랑하지만 믿지는 않는다고도 말했으며 그녀의 한국인에 대한 이해는 고대 한국 예술품에 대한 평가에 잘 나타났습니다 1980년 코벨은 동양미술사의 주류인 극동의 3개 국가를 비교했는데 동일하게 영어이니셜 'C'자로 시작하는 3개의 단어로 이를 표현했습니다
중국은 Control 통제
한국은 Casual 무심함
일본은 Contrived 작위적 이라는 것입니다
중국의 도자기는 유약의 종류와 양 등을 정해두고 철저히 통제속에 궁극의 경지에 다다르려 했다면 한국의 것은 말그대로 자연스러움 누가 봐도 어떤 유약을 썼고 재료를 사용했는지를 알 수 있는 무심함이라고 했습니다 일본의 도자기는 15세기 한국의 것을 높이 취해서 과도하게 발전시킨 나머지 작위적인 것이 됐고 한국의 것을 흉내내기 위해 일부러 도자기의 한쪽 끝을 구부리거나 깨뜨려 한국의 것이 갖는 무심함을 주려고 작위적으로 꾸미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인이 보기에 한국인의 도자기의 '무심함'은 솔직함과 통한다는 것이죠
솔직하지 못한 일본교육을 받은 한국의 학자들
물론 덧붙여 한국인이 모두 솔직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학문적으로 솔직하지 못한 한국의 조선사편수회 위원회에 대해서 일본식 교육을 받은 한국의 학자들로 인해 곤란을 겪었다고 상기했습니다 그리고 2년뒤 1982년 본질적으로 솔직하지 못한 일본은 처음 역사교과서 왜곡으로 파동을 시작해 이후 위안부 같은 변형된 형태로 계속 갈등을 일으킵니다
코벨은 본질적으로 솔직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잘못된 역사 왜곡 교과서를 배운 일본 청소년은 곧 군인 정년기가 된다면서 자기들이 저지른 침략, 전쟁의 흔적을 제거하는데 나설 것이라며 시간이 흘러 진상을 아는 자들이 모두 죽고나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1982년 우경화된 교과서로 공부한 이들이 어른이 된 일본의 오늘날에
자신의 뿌리에 대해서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는가 다시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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