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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경제

일제 패망후 50년, 한국 경제의 번영

by 미스터똘프 2020.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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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영의 초석, 미국에 의한 토지개혁

 

우리나라는 1960년대 1인당 국민소득은 100달러
소말리아 보다도 못살던 때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재 2018년에는 3만 달러 중반까지 상승
무려 300배 정도 성장, 50년 매년 평균 6%씩 성장

1945년 이후 식민지에서 독립한 국가들 중

빈곤의 악순환을 벗어나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4천 달러의 벽을 넘은 나라는

타이완과 우리나라 뿐이라고 합니다

 

빈곤의 악순환을 초래하는 첫번째 원인은 낮은 임금
토지에 비해 인구가 많으면 임금이 생존 수준을 겨우 유지
그래서 어떤 변화를 일으킬 '동기' 와 '자본'이 존재하기 힘

실제로 일제 강점기 때 조선의 소작료는 종자 값이나

농기구 등 농사를 짓는 데 투입되는 비용을 감안할 때

생산량의 30% 미만이었다고 합니다

지주들은 땅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가난한 소작농들의

땅을 담보로 높은 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고리대금업자

노릇까지 하면서 땅을 늘렸으며

지주들은 충분히 돈을 벌고 있었기 때문에

소작농들이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관개 시설이나

비료 구입 등에는 별반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극심한 문맹률

더우기 이러한 생존수준의 소득과 지주의 고리대금업이

결합되면 사회전반에 교육수준도 떨어지게 된다는 것

우리나라도 1944년 해방직전 15세 이상 인구 중에서

무학력자 비중이 남자는 80%, 여자는 94%

교육수준이 낮고 문맹률이 높으면 선진국의 새로운

정보통신기술, 유전공학기술 등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는

소수의 지주 자녀들에게만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기득권을 움켜쥔 지주들은 신기술의 유입에 따른

변화를 대부분 반대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현재의 지위, 기득권이 흔들릴까 두렵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1945년 이후 낮은 임금과 극심한 불평등

토지소유 분포 그리고 문맹률 이 3가지 삼중고를

해결하는 도약의 발판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바로 일제의 패망입니다

1945년 8월 말, 일제 강점기 때 일본에서 건너온 지주와
조선의 토착 대지주들이 일제 패망후 원료공급과

제조업 생산이 중단되자 다시 농촌으로 대거 이동

일본 사람 대다수는 자기나라로 건너갔으며

농촌으로 이동한 토착 대지주들은 다시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 토지집중적인 소작제도를 시행하게 됩니다

 

그러자 결국 나라 전체가 농업 생산량이 줄고

경제가 침체하게 됐습니다
토착 대지주들이 토지들을 소유하고 가난한 소작민들을

상대로 고리대금업을 시행하면서 이익을 독식했기 때문

이러한 상황은 대부분의 가난한 국민들로 하여금

토지 재분배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게 했고

뭔가 변화해야 하는 사회적 계기를 제공하게 됩니다

 

토지개혁

이때 일본을 굴복시킨 미국이 이러한 조선의 소작료를

1/3로 낮추고 조선총독부가 보유하던 대규모 토지를

농민에게 싸게 공급하게 됩니다

특히 미 군정은 2780제곱 킬로미터의 토지를 조선총독부와

일본 지주로부터 인수해서 1948년 초 농민에게 매각,

이는 농업인구의 24.1% 즉 농민 59만 1774가구가

토지의 새 주인이 되도록 했습니다

공식적으로 '토지개혁' 이라고 공표하고 시행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당시로서는 역사이래 대대적인

토지개혁인 샘이었습니다

 

당시 토지개혁을 주도했던 울프 라덴진스키는

러시아의 교훈에 따라 조선이 공산화되는 위험을 막기 위해

단행했다고 회고했습니다

1921년 러시아를 떠나기 전에 농민들에게 토지를 돌려 줌으로써

토지문제를 해결했더라면 공산주의자들이 러시아의 권력을

잡지 못했을 거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단행된 '토지개혁'이 가져다준 첫번째 변화는 바로 '경제'

토지개혁을 통해 농업생산성이 극적으로 향상되면서

농가소득이 증가하고 문맹률이 줄어드는 등 선순환이 이어졌습니다

그후 10여 년이 지난후 우리나라 경제는 문제에 봉착합니다
본격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더

만족되어야 했습니다

 

다음회 계속...

<2> 수출 제조업의 등장과 베트남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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